창세기 더 깊이 ㊺ 눈을 들어 · 롯도 아브람도 눈을 들어 땅을 보았는데 무엇이 달랐을까? (창세기 13:10~18)

창세기 더 깊이 · ㊺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풀꽃 핀 언덕 위에서 파란 옷을 입은 수염 난 젊은 남자가 이마에 손을 얹고, 굽이치는 강과 종려나무, 양 떼가 흩어진 넓은 초록 골짜기와 멀리 보이는 성을 바라보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0~18

1. 먼저 고른 사람, 남은 사람

파란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앞장서고 서로 다른 모습의 목자들이 양과 염소, 짐 실은 나귀를 몰며 강이 흐르는 들판 쪽으로 내려가고, 오른쪽 바위 언덕 위에서 초록 옷의 흰 수염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지켜보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앞 편에서 아브람과 조카 롯은 짐승이 너무 많아져서 한곳에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 집안의 목자들이 다투자,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13:8)고 말하고, 어느 쪽 땅을 가질지 먼저 고르라고 했습니다. 네가 왼쪽을 가지면 나는 오른쪽으로, 네가 오른쪽을 가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13:9).

오늘 본문은 롯이 고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13:10). 요단은 가나안 땅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고, 그 강을 따라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롯의 눈에 들어온 그 들은 소알이라는 곳까지 온통 물이 넉넉했습니다. 짐승을 많이 기르는 사람에게 물과 풀은 곧 살림입니다. 본문은 그 땅이 롯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두 가지에 견줍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여호와의 동산은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두신 에덴동산을 말합니다. 애굽은 지금의 이집트로, 큰 강 나일이 흘러 물이 마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본문은 롯이 고른 일을 곧바로 이어 적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3:11).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다가 장막을 옮겨 소돔이라는 도시까지 갔습니다(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롯이 그 땅을 바라보는 장면 한가운데에, 본문은 롯의 눈에 보인 것이 아닌 사실을 끼워 넣습니다. 그때는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13:10). 그리고 롯이 소돔까지 갔다는 문장 바로 뒤에 한 줄을 더 붙입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13).

이야기는 여기서 아브람에게로 돌아옵니다. 롯이 떠난 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3:14~15).

2. 좋은 땅은 롯이 가져갔는데?

우리는 무언가를 고를 때 눈에 보이는 것을 따릅니다. 집을 구할 때는 햇빛이 잘 드는지, 길이 가까운지를 봅니다. 일자리를 고를 때는 월급과 거리를 따져 봅니다. 롯도 그렇게 했습니다. 물이 넉넉하고 풀이 많은 땅을 골랐습니다. 짐승을 기르는 사람으로서는 누가 봐도 현명해 보이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아브람은 손해를 본 것처럼 보입니다. 물 좋은 들은 롯에게 돌아갔고, 아브람에게 남은 것은 롯이 고르지 않은 쪽 땅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읽는 사람은 이런 물음을 품게 됩니다. 아브람이 너무 순진하게 양보한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신 것은, 손해 본 아브람을 위로하시려는 것이었을까요.

이 장면을 ‘좋은 땅을 놓친 아브람’으로만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도 손해 본 사람을 달래는 말로만 들립니다. 그런데 본문을 천천히 읽어 보면, 롯과 아브람 두 사람 모두 똑같이 ‘눈을 들어’ 땅을 바라봅니다. 같은 동작인데, 본문은 두 사람이 눈을 든 방식을 아주 다르게 적습니다.

3. 조금 더 깊이 · 같은 ‘눈을 들어’, 다른 눈

풀꽃 핀 언덕 꼭대기에서 크림색 두건을 쓴 초록 옷의 흰 수염 노인이 두 팔을 벌리고, 끝없이 이어진 초록 언덕과 들판, 굽은 길을 바라보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롯과 아브람은 둘 다 눈을 들어 땅을 보았습니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보기에 좋은 땅을 자기를 위하여 골랐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떠난 뒤, 하나님이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실 때 눈을 들었고, 하나님은 그가 보는 땅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눈은 고르는 눈이었고, 아브람의 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눈이었습니다.

먼저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롯의 장면은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13:10)이고, 아브람의 장면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13:14)입니다. 구약 성경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아도 두 문장은 같은 말, ‘눈을 들다’와 ‘보다’를 씁니다. 창세기에서 ‘눈을 들어 보다’라는 표현은 열네 번 나옵니다. 그 가운데 처음 두 번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한 번은 롯에게, 한 번은 아브람에게 쓰였습니다.

차이는 누가 눈을 들게 했느냐에 있습니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었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한 말은 고르라는 것이었지, 어디를 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를 볼지는 롯이 정했습니다. 롯은 그 땅을 보았고, 그 땅을 골랐습니다. 반면 본문에서 아브람이 스스로 눈을 드는 장면은 없습니다. 롯이 떠날 때까지 아브람이 땅을 둘러보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아브람이 눈을 드는 것은 하나님이 “…너는 눈을 들어 …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다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보이는 땅”(13:15)이라고 하시는데, 히브리어로는 ‘네가 보고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아브람은 이미 그 땅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본 것도 다릅니다. 롯이 바라본 곳으로 본문이 적는 것은 한 곳, 물이 넉넉한 동쪽의 요단 들판입니다. 아브람에게는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 네 방향을 다 바라보라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롯이 고른 동쪽도 들어 있습니다.

본 다음에 일어난 일도 다릅니다. 롯은 보고 나서 ‘택하였습니다’(13:11). 우리말 성경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이 대목을 ‘롯이 자기를 위하여 골랐다’고 적습니다. 아브람 쪽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13:15). 그리고 조금 뒤에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3:17). 롯의 땅은 롯이 ‘자기를 위하여’ 고른 땅이고, 아브람의 땅은 하나님이 ‘네게’ 주시는 땅입니다.

본문은 롯이 고른 땅에 대해, 롯이 본 것 바깥의 사실도 알려 줍니다. 롯의 눈에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때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이었다고 적습니다(13:10). 또 소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고 적습니다(13:13). 롯이 본 것은 물과 풀입니다. 그 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롯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이었고, 그 땅의 사람들이 어떤지는 롯의 눈이 아니라 본문이 따로 알려 줍니다.

처음 물음은 이렇게 풀립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손해 본 아브람을 달래셨다고 적지 않습니다. 본문이 적는 것은 약속입니다. 롯이 고른 동쪽까지 들어 있는, 아브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순진하게 양보하고 손해만 본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먼저 고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보라고 하실 때 보았고, 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받았습니다.

4. 낱말 풀이 · 눈을 들다 · 택하다 · 동으로 · 두루 다니다

큰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초록 옷의 흰 수염 노인이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뒤쪽 하얀 장막들 곁에서 물동이를 든 여인과 아이, 목자가 양을 돌보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오늘 본문의 히브리어 낱말 네 가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① 눈을 들다 · 나사 에나임(נָשָׂא עֵינַיִם). ‘들다’라는 동사 나사와 ‘두 눈’이라는 말 에나임이 합쳐진 표현입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는 동작을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이 표현은 열네 번 나오는데, 첫 번째가 롯(13:10), 두 번째가 아브람(13:14)입니다. 그 뒤로도 이 표현은 눈을 든 사람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보게 되는 자리에 쓰입니다. 아브라함(아브람의 나중 이름)이 장막 문에서 세 사람을 볼 때(18:2), 이삭이 들에서 리브가의 일행을 볼 때(24:63), 야곱이 형 에서가 오는 것을 볼 때(33:1)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말하는 장면은 창세기에 두 번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13장 14절, 그리고 꿈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말하는 31장 12절입니다. 둘 다 하나님 쪽에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롯은 스스로 눈을 들었고, 아브람은 들라는 말씀을 듣고 눈을 들었습니다.

② 택하다 · 바하르(בָּחַר).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13:11)의 ‘택하고’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는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여기에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을 바로 붙여, ‘롯이 자기를 위하여 골랐다’고 적습니다. 창세기에서 ‘고르다’라는 이 동사는 두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한 번은 6장 2절입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2). 우리말 성경에서 ‘좋아하는’으로 옮긴 말이 바로 이 ‘고르다’입니다. 두 곳 모두 ‘보았다’가 ‘골랐다’로 곧장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롯의 선택은 보는 것에서 시작해 고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③ 동으로 · 미케뎀(מִקֶּדֶם). “…동으로 옮기니…”(13:11)의 ‘동으로’입니다. ‘동쪽에, 동쪽으로’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창세기에 여섯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2장 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에서 ‘동방의’가 이 낱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롯이 바라본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13:10)고 했습니다. 2장 8절에 함께 나온 ‘동산’과 ‘동쪽’이 오늘 본문에 다시 나란히 나오는 셈입니다. 롯은 에덴 같아 보이는 땅을 향해 동쪽으로 갔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 땅이 동산 ‘같았다’고만 말합니다. 그곳은 에덴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악한 소돔 곁이었습니다.

④ 두루 다니다 · 히트할렉(הִתְהַלֵּךְ).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13:17)의 ‘두루 다녀’입니다. ‘걷다’라는 동사가 이리저리 오가며 계속 걷는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종과 횡’은 세로와 가로, 곧 땅의 길이와 너비를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이 낱말은 여덟 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뺀 일곱 번은 모두 하나님과 이어진 걸음입니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3:8),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5:24),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에서 ‘거닐다’와 ‘동행하다’가 모두 같은 낱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아브람이 직접 걸어 보라는 데 쓰였습니다. 다른 일곱 번처럼 이 걸음도 하나님과 이어진 걸음이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롯은 땅을 멀리서 보고 골랐지만, 아브람은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발로 걸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한 가지 더 · 롯은 장막을, 아브람은 제단을

본문의 마지막 절은 아브람이 어디로 갔는지를 적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3:18). 헤브론은 가나안 땅 남쪽 산지에 있는 곳이고, 마므레는 그곳에 큰 상수리나무들이 서 있던 자리입니다.

여기서 ‘장막을 옮겨’는 히브리어로 한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오늘 본문에 한 번 더 나옵니다. 12절에서 롯이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할 때의 ‘장막을 옮겨’가 같은 낱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낱말이 쓰인 곳은 이 두 절뿐입니다. 롯도 장막을 옮기고, 아브람도 장막을 옮겼습니다.

다른 것은 그다음입니다. 롯의 문장은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로 끝나고, 바로 뒤에 소돔 사람들이 악했다는 말이 붙습니다. 아브람의 문장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로 끝납니다. 아브람이 제단을 쌓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처음 받은 세겜에서(12:7),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12:8), 그리고 이제 헤브론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주리라’고 하신 땅 곳곳에서, 아브람은 그 땅을 주실 분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앞에서 찾은 답을 옆에서 받쳐 줍니다. 롯은 자기 눈으로 고른 땅을 향해 장막을 옮겼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땅에서 장막을 옮기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같은 동작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갈라집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하나입니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보기 좋은 땅을 골랐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눈을 들어 보라’ 하실 때 눈을 들어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롯이 잘못한 일은 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물 좋은 땅을 고른 것 자체를 나무라는 말도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롯의 눈이 무엇을 보았는가입니다. 롯이 본 것은 물과 풀이었습니다. 그 땅의 사람들과 그 땅의 앞날은 본문이 따로 알려 줍니다. 그리고 본문은 롯의 선택이 ‘자기를 위하여’ 고른 것이었다고 덧붙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무언가를 고릅니다. 이사할 동네를 고르고, 아이가 다닐 학교를 고르고, 옮겨 갈 직장을 고릅니다. 그럴 때 우리 눈은 자연스럽게 롯의 눈처럼 움직입니다. 집값이 오를 곳, 월급이 많은 곳,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먼저 봅니다. 그렇게 고르다 보면, 남이 좋은 것을 먼저 가져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번에 놓치면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아브람은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물 좋은 들은 조카가 가져갔고, 그는 남은 쪽에 서 있었습니다. 본문은 아브람이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그가 스스로 땅을 둘러보며 아쉬워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아브람이 눈을 든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다음이었고, 하나님은 그가 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에는 위로가 되는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라고 하신 땅에는, 롯이 먼저 고른 동쪽도 들어 있었습니다. 남이 먼저 가져간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그림에서는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삶에서는 놓친 것이 오래도록 아쉬운 날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보여 주시는지 아직 잘 보이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 있는 곳에서’ 보라 하셨듯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보라 하십니까’ 여쭈며 고개를 들어 볼 수는 있습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고르는 일 앞에서 마음이 조급하다면, 고르기 전에 잠시 멈추어 ‘하나님, 제가 고르기 전에 보여 주세요’라는 한 줄을 적어 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브람이 새로 머문 자리에서 그 땅을 주실 분 앞에 제단을 쌓았듯, 고르는 일도 하나님 앞에 내놓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개를 들면, 보기 좋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이 조금 더 넓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땅을 주리라 약속하신 하나님, 우리는 날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먼저 고르려 합니다. 남이 좋은 것을 먼저 가져간 것처럼 보일 때 조급해지는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가 고르기 전에 주님이 보라 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것을 감사로 받게 하소서. 오늘 서 있는 자리에서 주님께 먼저 마음을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과자 두 봉지 중에 하나를 먼저 고르라고 하면, 너는 무엇을 보고 고를 거야?”를 묻고 아이들의 답을 들어 봅니다(더 큰 것, 좋아하는 맛, 포장이 예쁜 것). 이어서 “오늘 성경에는 땅을 먼저 고른 사람과, 먼저 고르라고 양보한 사람이 나와. 두 사람이 똑같이 한 동작이 있는데 그게 뭔지 찾아보자”라고 말하며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활동
오늘의 이미지 가운데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그림을 먼저 보여 주고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롯은 무엇을 보고 이 땅을 골랐을까?”를 물어 ‘물이 넉넉하니’를 찾게 합니다. 그다음 ‘너는 눈을 들어 … 바라보라’ 그림을 보여 주며 14~15절을 읽어 줍니다. 칠판(없으면 큰 종이)을 반으로 나누어 왼쪽에 ‘롯’, 오른쪽에 ‘아브람’이라고 쓰고, 두 사람에게 똑같이 나온 말 ‘눈을 들어’를 양쪽에 적게 합니다. 그리고 “롯은 누가 보라고 해서 봤어? 아브람은?”을 물어, 롯 쪽에는 ‘내가 스스로’, 아브람 쪽에는 ‘하나님이 보라고 하셔서’를 쓰게 합니다. “아브람이 고르라고 해서요”라는 답이 나오면 “맞아, 아브람은 고르라고 했지. 그런데 어디를 보라고는 안 했어. 어디를 볼지는 롯이 스스로 정했어”라고 이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롯은 땅을 ‘택했고’,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땅을 ‘주리라’ 하셨어”라고 짚어 줍니다.

적용
아이들에게 작은 카드를 나눠 주고, 요즘 고르기 어려운 일을 하나 떠올리게 합니다(예: 친구와 무엇을 하고 놀지, 용돈으로 무엇을 살지). 카드 앞면에 그 일을 적고, 뒷면에 ‘하나님, 제가 고르기 전에 보여 주세요’라는 한 줄 기도를 적게 합니다. 카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줍니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골랐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라고 하실 때 눈을 들었어. 다음에 무언가를 고를 때 이 카드를 떠올려 보자”라고 정리하고, 카드를 각자 가져가게 합니다.

🖼️ 오늘의 이미지 4장 · 길게 누르거나 우클릭해 저장하세요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는 롯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요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가는 롯의 일행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는 아브람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너는 눈을 들어 … 바라보라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는 아브람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이미지 라이선스 CC0 (퍼블릭 도메인) · 출처 표기 없이 자유롭게 사용·수정·재배포하실 수 있습니다.

🤖 이 이미지들은 AI(Grok)로 제작되었습니다.


📚 이 이야기, 수업으로 쓰시려면
▶ 창세기 더 깊이 ㊹ 우리는 한 친족이라 · 롯에게 먼저 고르라고 한 아브람, 오늘 본문 직전 이야기
📖 창세기 더 깊이 ㊷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 세겜과 벧엘 동쪽에 제단을 쌓은 아브람, 오늘 헤브론 제단 앞의 두 제단 이야기

Origin Bible · Mission Zedero
문의 joypej@gmail.com
✍️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사람이 검수했습니다.
본문 글은 CC BY-NC 4.0입니다. 출처를 밝히면 비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리진 바이블 영상으로 보기
성경 이야기 애니메이션과 창작 찬양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천지창조 교회학교 아동부·중고등부 공과 PPT 무료 다운로드 (창세기 1:1~2:3) · 오리진 바이블 #1

선악과 교회학교 아동부·중고등부 공과 PPT 무료 다운로드 (창세기 3:1~24) · 오리진 바이블 #3

창세기 더 깊이 ③ 뭍이 드러나던 날 · 풀이 해보다 먼저 나온 이유는? (창세기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