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더 깊이 ㊹ 우리는 한 친족이라 · 땅을 약속받은 아브람은 왜 조카에게 먼저 고르라고 했을까? (창세기 13:1~9)

창세기 더 깊이 · ㊹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밝은 아침, 연초록 언덕 사이로 난 흙길을 지팡이를 든 흰 수염 노인과 하얀 두건을 쓴 여인, 수염 난 젊은 남자가 앞장서 걷고, 양과 염소, 나귀, 소, 낙타가 줄지어 뒤따르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 13:1~9

1. 부자가 되어 돌아온 길

연초록 언덕 위, 거친 돌을 쌓아 만든 제단 곁에서 초록 옷을 입은 흰 수염 노인이 두 팔을 하늘로 들고, 두 언덕 사이 골짜기에 하얀 장막들이 모여 있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앞 편에서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애굽, 곧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소개했고, 사래는 바로(애굽의 왕)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자, 바로는 사래를 돌려보내고 아브람 일행을 애굽 밖으로 내보냈습니다(12:10~20).

오늘 본문은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첫 문장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 네게브로 올라가니”(13:1)입니다. 네게브는 가나안 땅 남쪽의 메마른 지역입니다. 앞 편에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갔고’(12:10), 이제 그곳에서 ‘올라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아브람은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적습니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13:2). 그 재산 가운데에는 애굽에서 바로가 사래 때문에 아브람에게 준 양과 소, 나귀와 낙타도 들어 있었습니다(12:16).

아브람은 남쪽 네게브에서 다시 북쪽으로 길을 떠납니다. 본문은 그가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꽤 자세하게 적습니다. 벧엘과 아이라는 두 마을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이고,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13:3~4). 애굽에 내려가기 전, 아브람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12:8). 본문은 아브람이 그곳에서 다시 한 일을 이렇게 적습니다.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4).

그다음에 일이 생깁니다. 아브람과 함께 다니던 조카 롯에게도 양과 소와 장막이 많았습니다. 두 집안의 짐승이 너무 많아서, 그 땅이 둘을 한곳에 다 품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이유를 분명히 적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13:6). 결국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그 다툼 앞에서 아브람이 롯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13:8). 그리고 이어서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 쉬운 말로 하면 ‘땅은 넓다. 우리 서로 떨어져 지내자. 네가 왼쪽을 가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을 가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을 가질지 먼저 고르는 자리를 조카에게 내준 것입니다.

2. 약속받은 땅인데, 왜 조카에게 먼저?

보통 집안에서 무언가를 나눌 때는 어른이 먼저 고릅니다. 아브람은 롯의 삼촌이고, 롯은 아브람을 따라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12:4). 게다가 이 땅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고 약속하셨던 땅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읽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합니다.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브람인데, 고르는 자리는 롯이 차지합니다. 만약 롯이 가나안 땅에서 가장 좋은 쪽을 골라 버리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브람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마음씨 좋은 삼촌이었던 것일까요.

이 대목을 ‘양보하는 착한 사람’ 이야기로만 읽으면 물음은 거기서 멈춥니다. 그런데 본문은 아브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아브람의 입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기 바로 앞에 아브람이 어디에 다녀왔는지도 적어 두었습니다.

3. 조금 더 깊이 · ‘우리는 형제다’, 그리고 먼저 다녀온 제단

풀꽃이 핀 언덕 위에서 초록 옷의 흰 수염 노인이 파란 옷을 입은 수염 난 젊은 남자 곁에 서서 손을 펴 아래쪽을 가리키고, 굽이치는 강이 흐르는 넓은 골짜기 곳곳에 양 떼가 흩어져 있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아브람이 댄 이유는 하나, ‘우리는 형제다’였습니다. 그에게는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는 것보다 형제 사이의 다툼을 멈추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가 이 말을 하기 바로 앞에, 전에 제단을 쌓았던 그곳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적습니다. 땅은 아브람이 붙잡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리라’ 하신 것이었기에, 그는 고르는 자리를 내주고도 약속을 잃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브람이 직접 댄 이유를 보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우리는 한 친족이라”로 옮겼는데,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 성경의 난외주(본문 옆에 붙인 풀이)는 이 말을 히브리어로 ‘형제들’이라고 밝혀 둡니다. 낱말 그대로 옮기면 ‘우리는 형제인 사람들이다’입니다. 롯은 사실 아브람의 형제가 아니라 조카입니다. 본문도 앞에서 롯을 ‘조카’라고 불렀습니다(12:5). 그런데 아브람은 롯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땅과 짐승을 두고 다툼이 벌어진 자리에서, 아브람은 먼저 둘이 어떤 사이인지를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아브람의 앞선 말과 나란히 놓으면 보입니다. 성경에 적힌 아브람의 말은 오늘 본문 전까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앞 편에서 애굽에 들어가기 직전 사래에게 한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12:13). 그 말의 한가운데에는 ‘나’가 있었습니다. 내가 안전하고, 내 목숨이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이 하는 두 번째 말은 다릅니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라고 둘을 나란히 부르고, ‘우리는 형제다’로 맺습니다.

본문은 아브람이 그 사이에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다만 두 말 사이에 한 가지 일을 적어 둡니다. 애굽에서 올라온 아브람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까지 올라갔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본문은 이 일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4)라고 적습니다. 앞 편의 애굽 이야기에는 제단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도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일이 다시 나오는 곳이 바로 이 자리이고, 다툼이 시작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문장이 있습니다. 목자들이 다투었다고 적은 바로 그 절에, 본문은 이 말을 덧붙입니다.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13:7).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은 그 땅에 먼저 와서 살던 민족들입니다. 그러니 두 집안이 다투던 풀밭은 아직 아브람의 것도, 롯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목자들이 다투어 얻어 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주셔서일 것입니다(12:7).

그러니 아브람이 고르는 자리를 롯에게 내준 것은 약속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롯이 떠난 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 약속을 되풀이하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3:15). 롯이 무엇을 골랐든, 약속은 그대로였습니다.

처음 물음은 이렇게 풀립니다. 아브람이 조카에게 먼저 고르라고 한 것은 순진해서도, 그저 마음씨가 좋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본문이 적은 그의 이유는 ‘우리는 형제다’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가 전에 제단을 쌓았던 자리로 돌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다음에 나왔습니다. 땅은 다투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기에, 아브람은 고르는 자리를 롯에게 내주고도 약속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자랄 때 ‘내 목숨’을 먼저 셈했던 사람이, 넘쳐서 생긴 다툼 앞에서는 형제를 먼저 불렀습니다.

4. 낱말 풀이 · 무겁다 · 다툼 · 형제 · 떠나가라

돌로 쌓은 둥근 우물을 사이에 두고 크림색 옷과 초록 옷을 입은 두 무리의 목자들이 지팡이를 든 채 손을 내밀며 서로 맞서 말하고, 그 앞에 양과 염소가 빽빽이 모여 있는 그림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구약 성경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히브리어 낱말 네 가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① 무겁다 · 카베드(כָּבֵד).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13:2)의 ‘풍부하였더라’입니다. 낱말의 기본 뜻은 ‘무겁다’입니다. 낱말 그대로 옮기면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으로 매우 무거웠다’가 됩니다. 이 낱말은 바로 앞 편에서도 나왔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까닭을 적은 12장 10절의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에서, ‘심하였음이라’가 같은 낱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심하다’와 ‘풍부하다’로 갈라 옮겼지만, 히브리어로는 기근이 ‘무거워서’ 내려간 사람이, 재산이 ‘무거운’ 사람이 되어 올라온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낱말이 이 모습으로 나오는 곳은 아홉 군데입니다. 다섯 번은 기근을, 세 번은 야곱의 장례 행렬과 그 슬픔(50:9~11)을 두고 쓰였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쓰인 곳은 오늘 본문의 아브람 한 번뿐입니다. 모자람도 무거웠고, 넘침도 무거웠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툼은 그 넘침의 무게에서 시작됩니다.

② 다툼 · 리브(רִיב)·메리바(מְרִיבָה). “…목자가 서로 다투고…”(13:7)는 히브리어로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이고, 여기의 ‘다툼’이 리브입니다. 아브람이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13:8)라고 한 말은 히브리어로 ‘다툼이 없게 하자’이고, 여기의 ‘다툼’이 메리바입니다. 메리바는 리브와 같은 말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둘 다 말다툼이나 시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두 낱말이 나오는 곳은 13장 7절과 8절, 이 두 절뿐입니다. 훗날 이삭의 목자들이 우물을 두고 다툰 26장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만, 거기서는 ‘다툼’이 아니라 ‘다투었다’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누가 먼저 다툼을 시작했는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는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아브람도 그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는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다툼 자체를 멈추자고 말합니다.

③ 형제 · 아힘(אַחִים). “우리는 한 친족이라”(13:8)의 ‘친족’입니다. 기본형은 ‘아흐’(형제)이고, 아힘은 그 여럿을 가리키는 말, 곧 ‘형제들’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말은 친형제만이 아니라 가까운 친척을 부를 때도 쓰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이 ‘친족’으로 옮긴 것입니다. 다만 아브람이 고른 낱말은 ‘조카’(12:5에서 본문이 쓴 말)가 아니라 ‘형제’였습니다. 위아래를 따지는 말 대신, 나란히 선 사람을 부르는 말을 고른 셈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 낱말은 다툼을 멈추게 하는 열쇠말입니다.

④ 떠나가라 · 히파레드(הִפָּרֶד). “…나를 떠나가라…”(13:9)의 ‘떠나가라’입니다. 기본 뜻은 ‘갈라지다’, ‘나뉘다’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말은 하나였던 것이 여럿으로 갈라질 때 쓰입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이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2:10), 홍수 뒤 노아의 자손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10:32)가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9절에서 아브람이 이 말을 꺼내고, 11절에서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4절에서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로 이어집니다. 아브람은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현실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투다가 등을 돌리는 갈라섬이 아니라, 서로 형제라고 부른 뒤에 길을 나누는 갈라섬을 제안했습니다.

5. 한 가지 더 · 갈라선 뒤에도 ‘형제’

아브람의 ‘우리는 형제다’는 그 자리를 수습하려고 한 번 해 본 말이었을까요. 본문을 조금 더 따라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보입니다.

롯은 결국 동쪽 요단 지역을 골라 떠나고, 소돔 가까이까지 장막을 옮깁니다(13:11~12).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큰일을 당합니다. 여러 왕이 소돔을 쳐들어와 롯을 사로잡고 그의 재물까지 빼앗아 간 것입니다(14:12). 그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람 삼백십팔 명을 이끌고, 멀리 북쪽 끝에 있는 ‘단’이라는 곳까지 쫓아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적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14:14).

여기서 우리말 ‘조카’로 옮겨진 말이, 히브리어로는 ‘그의 형제’입니다. 롯을 되찾아 오는 16절의 “…자기의 조카 롯…”도 히브리어로는 ‘그의 형제 롯’입니다. 본문은 12장 5절과 14장 12절에서는 롯을 ‘형제의 아들’, 곧 조카라고 정확히 부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롯을 구하러 달려가는 대목에서는 ‘형제’라고 부릅니다. 13장 8절에서 아브람이 롯을 부른 그 낱말입니다.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사는 곳도 달라졌고, 롯은 아브람과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그래도 형제라는 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갈라서기 전에 롯을 부른 ‘형제’라는 이름을, 본문은 갈라선 뒤에도 그대로 씁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형제를 구하러 북쪽 끝까지 달려갑니다. 이것이 앞에서 찾은 답을 옆에서 받쳐 줍니다. 아브람이 내준 것은 고르는 자리였지, 형제는 아니었습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하나입니다. 넉넉함이 다툼을 낳은 자리에서, 아브람은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는 형제다’라고 둘의 사이를 불렀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아브람은 목자들 가운데 누가 잘못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삼촌이라는 것도, 자기가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가 먼저 꺼낸 말은 둘이 어떤 사이인지였고, 그다음에야 땅을 어떻게 나눌지를 말했습니다.

아브람과 롯 사이의 다툼이 모자랄 때가 아니라 넘칠 때 생겼듯, 우리가 겪는 다툼도 넉넉해졌을 때 시작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남기신 집과 물건을 두고 형제자매 사이의 말이 날카로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시작한 가게가 잘되자, 누가 더 많이 일했는지를 두고 서운함이 쌓이기도 합니다. 일터에서 한 팀이 좋은 성과를 냈는데, 그 공이 누구의 것인지를 두고 사이가 어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들립니다. ‘이번만큼은 내 몫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아브람에게도 자기 몫을 먼저 챙길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는 어른이었고,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다툼보다 앞에 적어 둔 것은, 그가 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일입니다. 그리고 다툼 앞에서 그는 롯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이 본문에서 한 가지 위로를 더 끌어올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고르는 자리를 내준 뒤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남았습니다(13:15). 그리고 롯과의 사이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롯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성경은 아브람이 ‘그의 형제’를 구하러 달려갔다고 적습니다. 물론 우리가 먼저 내준 뒤에 손해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날도 있습니다. 상대가 그 마음을 몰라주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도, 먼저 불러 둔 ‘우리’라는 이름은 언젠가 다시 돌아갈 자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 일로 마음이 무겁다면, 몫을 따지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 사람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를 한 문장으로 먼저 적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십 년을 함께 지낸 형제다.’ ‘우리는 이 가게를 함께 시작한 친구다.’ 그 한 문장을 먼저 마음에 두고 대화에 들어가면, 몫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사람을 잃지 않는 말이 조금 더 쉽게 나올지도 모릅니다.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 우리 손에 무언가가 넉넉해질 때 우리 마음이 오히려 좁아지는 것을 아십니다. 내 몫을 따지기 전에 곁에 있는 사람과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먼저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가 먼저 내준 자리에서도 주님의 약속은 그대로임을 믿게 하시고, 갈라선 사람과도 다시 이어질 이름을 지켜 주소서.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친구랑 같은 장난감을 서로 갖고 싶을 때, 너는 어떻게 했어?”를 묻고 아이들의 답을 들어 봅니다(먼저 잡는다, 울면서 말한다, 선생님께 이른다). 이어서 “오늘 성경에는 양과 소가 너무 많아서 다툼이 생긴 집안이 나와. 그때 아브람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함께 찾아보자”라고 말하며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활동
오늘의 이미지 가운데 ‘목자가 서로 다투고’ 그림을 먼저 보여 주고 “왜 다투고 있을까?”를 묻습니다. 6절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를 함께 읽고, 짐승이 너무 많아서 생긴 다툼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그림을 보여 주며 8~9절을 천천히 읽어 줍니다. 칠판(없으면 큰 종이)에 ‘우리는 ○○이다’라고 쓰고, “아브람은 다툼을 멈추려고 롯에게 ‘우리는 무엇이다’라고 했지?”를 물어 아이들이 8절에서 ‘친족’이라는 말을 찾게 합니다. “‘친족’은 성경이 처음 쓰인 히브리어로는 ‘형제’라는 말이야”라고 알려 준 뒤, 빈칸에 ‘형제’를 쓰게 합니다. “롯은 원래 아브람의 조카였는데, 아브람은 롯을 형제라고 불렀어”라고 짚어 줍니다.

적용
아이들에게 작은 카드를 나눠 주고, 요즘 무언가를 두고 자주 다투는 사람을 한 명 떠올리게 합니다(예: 동생, 짝꿍). 카드에 ‘우리는 ○○이다’를 적고, 그 사람과 나의 사이를 빈칸에 채우게 합니다(예: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우리는 같은 반 친구다). 카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줍니다. “목자들이 다툴 때, 아브람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는 형제다’라고 말했어. 다음에 그 사람과 다툴 것 같을 때 이 카드를 떠올려 보자”라고 정리하고, 카드를 각자 가져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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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 네게브로 올라가는 아브람의 일행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아브람이 애굽에서 네게브로 올라가니
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람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롯에게 온 땅을 가리키는 아브람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는 모습 · 오리진 바이블 무료 성경 이미지
목자가 서로 다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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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 수업으로 쓰시려면
▶ 창세기 더 깊이 ㊸ 사래의 일로 ·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 오늘 본문 직전 이야기
📖 창세기 더 깊이 ㊷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 약속의 땅에 들어온 아브람이 세겜과 벧엘 동쪽에 제단을 쌓은 이야기

Origin Bible · Mission Zedero
문의 joypej@gmail.com
✍️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사람이 검수했습니다.
본문 글은 CC BY-NC 4.0입니다. 출처를 밝히면 비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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