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더 깊이 ㉕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 라멕은 왜 아들 이름에 땅의 저주를 적어 넣었을까? (창세기 5:25~32)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기 5:25~32
1. 이름 대신 ‘아들’이라고 적힌 자리
창세기 5장은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사람의 기록을 차례로 적습니다. 기록은 대부분 같은 틀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았고, 그 뒤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몇 세를 살고 죽었다는 틀입니다. 25~27절의 므두셀라도 이 틀을 그대로 따릅니다.
28절에서 틀이 잠시 멈춥니다. 다른 이들의 기록에는 “몇 세에 누구를 낳았고” 하고 아들의 이름이 곧바로 나옵니다. 아담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3절)처럼 한 절 안에서 이름을 밝힙니다. 라멕의 기록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에서 절이 끝납니다. 이름은 다음 절에 가서야 나오고, 이름 뒤에는 라멕이 한 말이 이어집니다.
5장에서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준 일이 적힌 아버지는 둘입니다. 아담이 셋에게(3절), 그리고 라멕이 노아에게(29절) 이름을 지어 줍니다. 그런데 이름을 지으며 한 말까지 적힌 아버지는 라멕 한 사람뿐입니다. 그 말이 낯섭니다.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라멕은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과 고된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물음이 생깁니다. 라멕은 왜 아들 이름에 땅의 저주를 적어 넣었을까요?
2. 한숨처럼 들리는 말
29절을 처음 읽으면 한숨처럼 들립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이라는 말은 기쁜 날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기 이름을 짓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셨다는 말을 꺼냈으니, 하나님을 탓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고된 하루에 지친 아버지가 푸념을 늘어놓은 것처럼 읽힙니다.
그렇게 읽으면 이 절은 라멕의 고단한 마음을 적은 한 줄로 끝납니다. 노아라는 이름도 그 푸념에 붙은 꼬리표가 됩니다.
그러나 이 짧은 말에는 푸념으로 읽으면 놓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라멕이 쓴 낱말들이 어디서 왔는가, 라멕이 하나님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가, 그리고 그 말의 중심이 어디에 놓였는가입니다.
3. 조금 더 깊이 · 저주를 기억한 사람의 소망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라멕이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땅의 저주를 함께 말한 것은, 무엇에서 위로를 바라는지를 덮지 않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라멕은 3장 17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낱말 그대로 되받았고, 그 저주를 내리신 분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읽으면 그 말은 저주가 아니라 ‘이 아들이 우리를 안위하리라’로 시작합니다.
먼저 낱말입니다. 하나님은 동산에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17)
이 절에는 땅(아다마), 저주하다(아라르), 수고(잇차본) 세 낱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이 세 낱말이 한 절에 다시 모이는 곳은 5장 29절 하나뿐입니다. 수고로 옮긴 이 히브리어 낱말은 히브리 성경 39권 전체에서 3장 16절(우리말 성경은 ‘고통’으로 옮겼습니다), 3장 17절, 5장 29절 세 곳에만 쓰였습니다. 아담에게서 여러 대가 지났지만, 라멕은 하나님이 동산에서 하신 그 말씀을 낱말까지 그대로 입에 담았습니다.
다음은 라멕이 하나님을 부른 이름입니다. 5장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29절 라멕의 말에 단 한 번 나옵니다. 5장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나머지 다섯 번은 모두 ‘하나님’(엘로힘)입니다. 3장에서 땅을 저주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립니다. 라멕은 바로 그 이름을 부르며, 땅이 저주를 받은 일을 3장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탓하는 새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되받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문장의 짜임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라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를 앞에 두었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은 순서가 반대입니다. ‘이 아들이 우리를 안위하리라’로 시작하고, 무엇에서 안위하는지가 뒤에 붙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우리 손의 수고에서, 그리고 땅에서입니다. 저주는 맨 끝에 ‘여호와께서 저주하신’이라는 꾸밈말로 땅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라멕의 말은 저주를 늘어놓는 푸념이 아닙니다. 라멕은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도, 그 땅에서 일하는 것이 고되다는 것도 하나도 덮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말의 첫머리에는 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를 두었습니다. 노아라는 이름은 푸념에 붙은 꼬리표가 아니라, 그 기대를 담은 이름입니다.
4. 낱말 풀이 · 노아 · 안위하리라 · 수고 · 저주하다
① 노아 · 노아흐(נֹחַ). 히브리어 자음 두 글자로 된 짧은 이름입니다.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의 난외주는 이 이름의 뜻을 ‘안위함’으로 적어 둡니다.
② 안위하리라 · 예나하메누(יְנַחֲמֵנוּ). ‘그가 우리를 위로하리라’를 한 낱말로 적은 것입니다. 이 동사의 어근(נחם)은 노아의 이름과 첫 두 글자(נח)가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과 그 풀이가 소리로 이어집니다. 창세기는 뒤에서도 이 어근을 위로의 자리에 씁니다. 어머니를 여읜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위로를 얻었더라”(24:67), 요셉이 두려워하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1)가 그 예입니다.
③ 수고 · 잇체본(עִצְּבוֹן). 3장 16절의 해산하는 ‘고통’과 17절의 ‘수고’로 옮겨진 바로 그 낱말입니다. 3장에서는 모음 표기가 조금 달라 잇차본으로 읽습니다. 29절은 여기에 ‘우리 손의’를 붙여, 날마다 땅을 일구는 손의 수고라고 적습니다.
④ 저주하다 · 에레라흐(אֵרְרָהּ). ‘그것을 저주하셨다’라는 뜻이고, ‘그것’은 땅입니다. 같은 동사가 창세기에서 여덟 절(3:14, 3:17, 4:11, 5:29, 9:25, 12:3, 27:29, 49:7)에 쓰입니다. 그 가운데 땅이 저주를 받는 절은 3장 17절과 5장 29절 둘입니다.
5. 한 가지 더 · 라멕이 듣지 못한 말씀
라멕이 말한 땅과 저주는 노아의 이야기 끝에서 다시 나옵니다.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자, 여호와께서 그 중심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창세기 8:21)
땅, 저주, 그리고 ‘사람으로 말미암아’가 다시 한 문장에 모였습니다. ‘말미암아’는 3장 17절의 ‘너로 말미암아’와 히브리어로도 같은 말입니다. 다만 ‘저주하다’는 3장과 5장의 아라르가 아니라 다른 동사입니다. 그러니 8장 21절이 라멕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라멕이 아들 이름을 지으며 말한 땅과 저주가 노아의 이야기 끝에서 ‘다시는 저주하지 아니하리니’라는 여호와의 말씀 안에 다시 나온다는 데까지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이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30절에 따르면 라멕은 노아를 낳은 뒤 오백구십오 년을 살았습니다. 홍수는 노아가 육백 세일 때 왔습니다(7:6). 라멕은 홍수가 나기 다섯 해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건 기대가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한 채, 그 기대를 아들의 이름에 담아 남겼습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하나입니다. 라멕은 힘든 형편을 덮지 않고 말하면서도, 그 말의 중심에는 갓 태어난 아들에게 거는 소망을 두었습니다.
라멕의 말에는 꾸민 데가 없습니다. 고된 형편이 그대로 들어 있지만, 그 말은 한숨에서 시작하지 않고 갓 태어난 아이를 향한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그 소망이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했지만, 소망을 말로 남기는 일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가볍지 않습니다. 일은 고되고, 형편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고단함을 없는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멕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단함에서 말을 멈추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의 말을 함께 건넬 수 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마주 앉은 가족에게,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자라나는 아이에게 ‘너를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고 한마디 남기는 일입니다. 라멕처럼, 우리가 다 보지 못할 앞날을 향해 소망의 말을 남겨 두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된 땅 위에서도 소망을 말하게 하시는 하나님, 저희의 힘든 형편을 주님 앞에 숨기지 않게 하시고, 저희 말의 중심에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소망을 두게 하소서. 저희가 다 보지 못할 앞날까지 주님께 맡기며, 오늘 만나는 이들의 이름을 기대로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네 이름에는 무슨 뜻이 있는지 알아?”를 묻고, 아는 아이들에게 이름 뜻을 말해 보게 합니다. 모르는 아이에게는 집에 계신 어른께 여쭤 보자고 말해 둡니다. 이어서 “성경에 아기 이름을 지으면서 꽤 긴 말을 남긴 아빠가 나와”라고 말하며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활동
칠판에 25~27절의 므두셀라 기록을 ‘낳고 · 지내며 자녀를 낳고 · 살고 죽었더라’로 짧게 적고 함께 읽습니다. 그다음 28~29절을 함께 읽고, “라멕의 기록에는 칠판의 틀에 없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를 물어 라멕이 한 말을 찾게 합니다. 이어서 그 말에서 힘든 이야기와 기대하는 이야기를 나눠 찾아보게 합니다. 아이들이 찾으면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은 파란 분필로,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는 노란 분필로 적습니다. ‘안위’는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고 위로해 준다는 뜻이라고 풀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미지 가운데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그림을 띄우고, 그림 속 아빠가 아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말해 보게 합니다.
적용
아이들에게 작은 카드와 연필을 나눠 줍니다. 아이들은 짝꿍의 이름을 넣어 “○○(이)가 있어서 ____ 할 거야”를 한 줄 적습니다(민준이가 있어서 우리 반이 더 많이 웃을 거야, 서아가 있어서 내가 덜 심심할 거야처럼). 다 쓰면 짝꿍끼리 서로 소리 내어 읽어 주고, 카드는 이름이 적힌 짝꿍에게 건네주어 가져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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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 |
우리 손의 수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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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미지들은 AI(ChatGPT)로 제작되었습니다.
📖 창세기 더 깊이 ⑯ 같은 낱말의 수고 · 라멕이 되받은 낱말 ‘수고’가 처음 나온 3장 16~19절 이야기
Origin Bible · Mission Zedero
문의 joypej@gmail.com
✍️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사람이 검수했습니다.
본문 글은 CC BY-NC 4.0입니다. 출처를 밝히면 비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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