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더 깊이 ⑯ 같은 낱말의 수고 · 여자의 고통과 남자의 수고는 서로 다른 벌이었을까? (창세기 3:16~19)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6~19
1. 여자에게 하신 말씀, 남자에게 하신 말씀
뱀에게 선고를 내리신 하나님은 이제 사람에게 돌아서십니다. 먼저 여자에게, 그다음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 하신 말씀은 아이를 낳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땅에서 먹을 것을 얻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뱀에게는 “…더욱 저주를 받아…”라고 하셨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주를 받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땅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저주라는 말 대신, 앞으로의 삶이 어떠할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자에게 하신 말씀과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벌일까요?
2.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벌을 받았을까
우리말 성경으로 읽으면 두 말씀은 따로 떨어져 보입니다. 여자에게 더하신 것은 ‘임신하는 고통’이고, 남자가 평생 해야 하는 것은 ‘수고’입니다(여자에게 하신 말씀에도 ‘수고하고’가 있는데, 이 말은 뒤에서 따로 살펴봅니다). 한쪽은 몸이 아픈 일이고, 다른 쪽은 땀 흘려 일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여자가 받은 벌’과 ‘남자가 받은 벌’로 나누어 읽는 일이 많습니다. 나누어 읽으면 곧이어 이런 물음이 따라옵니다. 누구의 벌이 더 무거운가. 누가 더 많이 잘못했기에 저런 말을 들었는가.
교실에서도 비슷한 물음이 나옵니다. “하와랑 아담 중에 누가 더 크게 혼난 거예요?” 두 말씀을 서로 다른 벌로 읽는 한, 이 물음은 둘 중 한 사람을 고르는 데서 끝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두 말씀을 한 낱말로 묶어 두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그 끈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3. 조금 더 깊이 · 여자의 고통과 남자의 수고는 같은 낱말이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여자의 ‘고통’과 남자의 ‘수고’는 히브리어로 같은 낱말입니다. 16절에서 여자에게 하신 ‘임신하는 고통’의 고통도, 17절에서 아담에게 하신 ‘수고하여야’의 수고도 잇차본이라는 한 낱말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같은 수고를 각자 다른 자리에서 지게 된 것입니다. 누구의 짐이 더 무거운지를 따지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이름의 짐이 놓였습니다.
그 짐이 놓인 자리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여자에게는 아이를 낳는 일에, 남자에게는 땅에서 먹을 것을 얻는 일에 놓였습니다. 하나는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난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일입니다. 둘 다 생명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이어 가는 일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자식을 낳을 것이고, 남자는 여전히 땅의 소산을 먹을 것입니다. 1장에서 사람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라는 복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때 먹을거리로 주신 채소도 18절에 ‘밭의 채소’로 다시 나옵니다. 다만 그 일마다 수고가 얹혔습니다.
이 수고는 두 사람이 모두 그 열매를 먹은 뒤에 놓였습니다. 3장 6절에서 여자는 열매를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었고, 남편도 먹었습니다. 17절에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도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로 시작합니다. 둘이 함께 먹었고, 둘이 함께 같은 수고를 지게 되었습니다.
16절 뒷부분은 두 사람 사이도 이제 쉽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2장 끝에서 ‘한 몸’이던 두 사람입니다. 그 사이는 어그러졌지만, 두 사람이 지게 된 짐의 이름은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4. 낱말 풀이 · 수고 · 땀 · 흙
① 수고 · 잇차본(עִצָּבוֹן). ‘괴로운 수고, 애쓰는 고됨’을 뜻하는 말입니다. 16절에는 ‘너의 수고’라는 꼴로 잇체보넥(עִצְּבוֹנֵךְ), 17절에는 ‘수고 속에서’라는 꼴로 베잇차본(בְּעִצָּבוֹן)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히브리 성경 서른아홉 권을 통틀어 세 번만 나옵니다. 창세기 3장 16절, 3장 17절, 그리고 5장 29절입니다. 세 번 가운데 두 번이 여자와 남자에게 나란히 쓰였습니다.
16절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 한 번 더 있습니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의 수고가 베에체브(בְּעֶצֶב)입니다. 잇차본과는 꼴이 다른 낱말이지만 뿌리가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말 성경에서 여자의 ‘고통’도, 여자의 ‘수고’도, 남자의 ‘수고’도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② 땀 · 제아(זֵעָה). 19절의 ‘얼굴에 땀을 흘려야’는 히브리어로 ‘네 얼굴의 땀으로’, 베제아트 아페카(בְּזֵעַת אַפֶּיךָ)입니다. 제아라는 낱말은 히브리 성경에서 여기 한 곳에만 나옵니다. 여기서 ‘얼굴’로 옮긴 아페카는 본래 ‘코’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신 바로 그 코입니다. 생명의 숨이 들어온 그 자리로 이제 땀이 흐릅니다.
③ 흙 · 아파르(עָפָר). 19절 끝에 두 번 나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에서 이 낱말은 2장 7절에 처음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리고 두 번째로 나오는 곳이 3장 14절, 뱀에게 내리신 ‘흙을 먹을지니라’는 선고입니다. 세 번째가 3장 19절입니다. 사람이 지어진 재료였던 흙이, 이제 사람이 돌아갈 곳으로 불립니다.
다만 19절은 곧바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합니다. 이 자리의 ‘흙’은 아파르가 아니라, 17절에서 저주를 받은 ‘땅’과 같은 아다마입니다.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의 ‘그것’도 이 땅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나온 그 땅을 수고하며 일구다가, 그 땅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땀을 흘리며 먹고 살아갑니다.
5. 한 가지 더 · 세 번째 ‘수고’가 나온 자리
잇차본이 히브리 성경에 세 번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세 번째 자리는 창세기 5장, 아담의 족보 끝자락입니다. 라멕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짓는 장면입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 한 절 안에 3장 17절의 낱말 셋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땅(아다마), 저주하다, 그리고 수고(잇차본)입니다. ‘수고롭게 일하는’이 히브리어로는 ‘우리 손의 수고’, 우메잇체본 야데누(וּמֵעִצְּבוֹן יָדֵינוּ)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낱말들이 여러 세대를 건너 라멕의 입에서 다시 나옵니다. 라멕은 갓 태어난 이 아들이 그 수고에서 ‘우리’를 안위해 주기를, 곧 위로하고 쉬게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3장에서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같은 낱말로 놓였던 그 수고를, 라멕은 ‘우리’의 수고라고 부릅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하나입니다. 옆 사람의 수고는 내 수고와 같은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한 낱말, 남자에게 한 낱말을 따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낱말을 두 번 쓰셨습니다. 아이를 낳는 수고와 밭에서 먹을 것을 얻는 수고는 모양이 달라도 이름이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 수고를 가장 크게 느낍니다. 내 짐은 몸으로 느끼지만 남의 짐은 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는 식구마다 맡은 일이 달라 서로의 하루를 가볍게 여기기 쉽고, 교실에서는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아이가 서로의 수고를 잘 모릅니다.
그럴 때 창세기 3장은 두 사람에게 같은 낱말을 주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수고가 더 무거운지 저울질하기 전에, “당신도 수고했지요”라고 먼저 말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짐을 진 사람끼리 건네는 말입니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같은 낱말로 말씀하신 하나님, 저희가 저희 수고만 크게 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땀 흘리는 날에도 생명을 이어 가게 하시는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같은 이름의 짐을 진 사람들과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며 함께 걷게 하소서.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우리 집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누구일까?”를 묻고 떠오르는 대답을 칠판에 적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나 자신까지 여러 답이 나오게 둡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6절과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활동
아기를 안은 여자의 이미지와 가시덤불 밭에서 괭이질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나란히 띄웁니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를 묻고 다른 점을 찾게 합니다. 그다음 16절의 ‘임신하는 고통’과 17절의 ‘수고하여야’를 짚으며 “우리말로는 ‘고통’과 ‘수고’로 달라 보이지만, 성경이 처음 쓰인 말로는 한 낱말이야”라고 알려 줍니다. 마지막으로 괭이질하는 남자의 그림에서 멀리 아기를 안은 여자를 찾게 하고, “이 두 사람이 하는 일이 없으면 무엇이 없어질까?”를 묻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답과 먹을 것이 없다는 답이 모두 나오면, 두 사람 모두 생명을 이어 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모읍니다.
적용
도입 질문에서 칠판에 적은 이름 옆에, 그 사람이 하는 수고를 한 가지씩 함께 적어 봅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이번 주에 그 수고의 이름을 넣어 “○○ 하느라 수고했어요”라고 말로 건네 보자고 권합니다. 수고를 눈으로만 보지 않고 이름으로 불러 주는 연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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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Bible · Mission Zed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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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사람이 검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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