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더 깊이 ㉟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 무지개는 누가 보라고 두신 것일까? (창세기 9:8~17)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 9:8~17
1. 오늘 본문에 일곱 번 나오는 말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가족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앞 본문(9:1~7)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자식을 많이 낳아 땅에 가득하라고 하셨고, 고기를 먹어도 되지만 피째 먹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는 ‘하라’와 ‘하지 말라’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에 바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아들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본문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언약’입니다. 언약은 ‘약속’이라는 뜻이고, 그중에서도 두 쪽 사이에 단단히 맺는 약속을 말합니다. 9장 8절부터 17절까지 이 말이 모두 일곱 번 나옵니다(9, 11, 12, 13, 15, 16, 17절). 구약 성경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쓰였는데, 히브리어 본문에서도 똑같이 일곱 번입니다.
약속의 내용은 하나입니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9:11).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에 눈에 보이는 표를 하나 붙이십니다. 구름 속의 무지개입니다. 눈에 보이는 표라면 누군가 보라고 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누가 보라고 두신 것일까요?
2. 우리가 아는 약속의 표
우리가 약속할 때를 떠올려 보면 이렇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결혼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 줍니다. 약속에는 보통 이렇게 눈에 보이는 표가 따라붙습니다. 그리고 그 표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우리가 보라고 있는 것입니다. 반지를 볼 때마다 그 약속을 떠올리고, 지키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도 사람이 보라고 주신 표로 읽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지개를 보여 주시고, 사람은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려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무지개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숙제가 됩니다. 사람이 잊으면 약속도 흐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본문을 천천히 읽으면 이렇게 읽는 것과 맞지 않는 말이 나옵니다. 16절입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9:16)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에게 무지개를 보고 기억하라고 하신 말은 본문에 없습니다.
3. 조금 더 깊이 · 하나님이 보시려고 두신 표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이 언약에서 사람에게 맡겨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언약을 세우시는 분도,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는 분도, 그것을 보시는 분도,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입니다. 무지개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보시고 이 약속을 붙드시려고 두신 표입니다.
본문 안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언약을 세운다는 말 앞에는 늘 ‘내가’가 붙습니다(9, 11, 12, 17절).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둔다는 말 앞에도 ‘내가’가 있습니다(13절). 구름으로 땅을 덮는다는 말(14절), 언약을 기억한다는 말(15, 16절), 무지개를 본다는 말(16절) 앞에도 모두 ‘내가’가 있습니다. 이 ‘나’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대로 노아나 아들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오늘 본문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앞 본문에 있던 ‘하라’와 ‘하지 말라’가 여기에는 없습니다.
14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9:14~15). 우리말 성경은 ‘나타나면’으로 옮겼지만, 히브리어로는 ‘보이면’에 가까운 말입니다. 그런데 14절은 무지개가 보인다고만 하고, 누가 그것을 보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보는 이가 누구인지 처음 밝히는 곳은 16절이고, 보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에는 이 무지개와 견주어 볼 만한 표가 하나 더 있습니다. 17장의 할례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몸에서 살갗 한 부분(포피)을 베어 내는 예식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몸에 남기는 표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9장에서는 ‘언약의 증거’, 17장에서는 ‘언약의 표징’이라고 다르게 옮겼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로는 둘 다 ‘오트 베리트’, 곧 ‘언약의 표’로 같은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 말은 네 번 나옵니다. 9장에 세 번(12, 13, 17절), 17장에 한 번(11절)입니다. 17장의 두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17:9)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17:11)
17장의 표는 사람이 자기 몸에 직접 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집안의 남자들이 지켜야 하는 일이고, 사람이 하지 않으면 그 표도 생기지 않습니다. 9장의 표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두시고, 하나님이 보십니다. 같은 ‘언약의 표’인데, 하나는 사람이 지키는 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표입니다.
그러니 무지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시려고 두신 표입니다. 물론 사람도 무지개를 볼 수 있고, 볼 때마다 이 약속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약속이 지켜지는 것은 사람이 이 약속을 잊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보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4. 낱말 풀이 · 베리트 · 케셰트 · 자카르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어 낱말 세 개를 짚어 보겠습니다.
① 언약 · 베리트(בְּרִית). 두 쪽 사이에 맺는 단단한 약속을 가리킵니다. 9절, 11절, 15절에는 ‘내 언약’이라는 뜻의 베리티(בְּרִיתִי)로 쓰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11절에서만 ‘내’ 없이 ‘언약’으로 옮겼습니다. 창세기에서 이 낱말이 처음 나오는 곳은 6장 18절입니다. 홍수 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약속하신 언약을 홍수가 끝난 뒤 이 자리에서 세우십니다.
② 무지개 · 케셰트(קֶשֶׁת). 13절의 ‘내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카슈티(קַשְׁתִּי)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무지개만 따로 가리키는 낱말이 없습니다. 케셰트는 본래 ‘활’, 곧 화살을 쏘는 활을 뜻합니다. 창세기에서 9장 말고 이 낱말이 나오는 곳은 네 곳인데, 모두 사람이 쓰는 활입니다. 그 네 곳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하갈이 아이에게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 앉습니다(21:16). 화살이 날아가 닿을 만큼의 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아들 에서에게 활을 가지고 사냥하러 가라고 합니다(27:3). 야곱은 ‘내 칼과 활’을 말하고(48:22), 아들 요셉을 축복할 때 요셉의 활을 말합니다(49:24). 케셰트가 이렇게 ‘활’을 뜻하는 말이어서, 오래전부터 이 장면을 하나님이 활을 내려 구름에 걸어 두신 모습으로 읽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이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분명히 적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의 다른 네 곳에서 케셰트는 모두 사람이 쓰는 활인데, 9장의 이 케셰트만은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부르십니다. 사람이 손에 쥐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대로, 그것을 구름 속에 두시는 분도(13절), 바라보고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도(16절) 하나님이십니다.
③ 기억하다 · 자카르(זָכַר). 15절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의 ‘기억하리니’는 히브리어로 베자카르티(וְזָכַרְתִּי)입니다. 기본형 자카르에 ‘그리고 내가 …하리라’는 뜻이 붙은 말입니다.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은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에 두신 그 일을 위해 움직이신다는 뜻입니다. 8장 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 안의 짐승들을 ‘기억하사’ 곧바로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15절도 ‘기억하리니’ 다음에 곧바로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가 따라옵니다. 8장에서는 홍수가 이미 났을 때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9장에서 하나님은 앞으로 구름이 땅을 덮을 때마다 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미리 말씀해 두십니다.
5. 한 가지 더 · 새와 가축도 언약의 상대가 되다
이 언약을 맺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9장 10절은 그 상대를 이렇게 적습니다.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9:10)
우리말 성경에서 ‘생물’이라는 말도 ‘언약’처럼 오늘 본문에 일곱 번 나옵니다. 13절에서는 아예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세상’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로 ‘땅’입니다. 홍수 전의 약속(6:18)은 ‘너와는’, 곧 노아 한 사람을 향한 말이었습니다. 이번 언약은 노아와 아들들, 그 후손, 새와 가축과 들짐승, 그리고 땅까지 품습니다.
새와 가축은 약속을 듣고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언약의 상대로 부르십니다. 이것은 이 언약이 상대가 무엇을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위에서 본 대로, 이 언약을 세우시고 기억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언약은 ‘대대로 영원히’(12절) 세우는 언약, ‘영원한 언약’(16절)이 될 수 있습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하나입니다. 무지개 언약을 붙드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노아의 가족이 이 약속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다고 적지 않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단(제단)을 쌓았을 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8:21).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켜 내는 몫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기억하는 일까지 하나님이 스스로 맡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무게를 자주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기도 한 줄 드리지 못하고 하루를 넘긴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다짐을 며칠 만에 잊어버린 날도 있습니다. 오래 아파 누워 있는 가족 곁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밤도 있고, 일이 꼬여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던 한 주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놓아 버렸으니 하나님과의 사이도 끝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노아도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노아와 아들들이 한 말이 한 마디도 적혀 있지 않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만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이 받은 것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지키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물론 이 본문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앞 본문에도, 성경의 다른 곳에도 사람이 지켜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이 무지개 언약은, 우리가 무엇을 붙들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이 약속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약속을 듣고 지킬 수 없는 새와 가축까지 이 언약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약속 안에 있는 것도 우리가 잘 붙들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잊은 날에도 하나님의 기억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구름이 땅을 덮을 때마다 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미리 말씀해 두셨습니다. 그 사실이 당장 우리 형편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붙들 힘이 없는 날 기댈 자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중 하나님 앞에서 ‘내가 놓쳤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수첩이나 휴대전화 메모에 짧게 적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잊어도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신다’는 한 줄을 함께 적어 두시면 됩니다. 우리가 붙들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남은 하루를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시고 그것을 보며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신 하나님, 우리가 붙들 힘이 없는 날에도 주님이 먼저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잊은 날에도 잊지 않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오늘 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지쳐 있는 이들도 이 약속 안에서 쉬게 하소서.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친구랑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잖아. 그 약속은 누가 지켜야 할까?”를 묻고 아이들의 답을 들어 봅니다. 이어서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시면서 표를 하나 두시는데, 그 표를 보고 약속을 기억하겠다고 하신 분이 누구인지 함께 찾아보자”라고 말하며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활동
9장 8~17절을 개역개정으로 함께 읽으며 ‘언약’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게 합니다. 다 읽고 손가락 일곱 개가 접혀 있으면, 오늘 본문이 ‘약속’ 이야기라는 것을 짚어 줍니다. 다음으로 16절을 다시 읽고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신 분은 누구지?”를 묻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찾으면, 칠판이나 큰 종이에 ‘세우신다 · 두신다 · 보신다 · 기억하신다’를 적고 그 앞에 모두 ‘하나님이’를 붙여 함께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미지 가운데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그림을 화면에 띄우거나 인쇄해 보여 주고 “이 무지개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억하시려고 두신 걸까?”를 물어 봅니다.
적용
아이들에게 작은 카드를 나눠 주고 무지개를 그리게 합니다. 무지개 아래에 “내가 깜빡 잊은 날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세요”라고 함께 적습니다. 카드를 가방에 넣기 전에, 약속을 잊어버려 속상했던 때를 한 가지씩 떠올려 보게 하고 카드의 문장을 다 같이 한 번 소리 내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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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 세우리니 |
![]()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 |
![]()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
![]() 내가 보고 …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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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더 깊이 ㉚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 살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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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사람이 검수했습니다.
본문 글은 CC BY-NC 4.0입니다. 출처를 밝히면 비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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