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더 깊이 ① 빛이 있으라 — 해도 달도 없는데 웬 빛일까? (창세기 1:1–5)
함께 공부한 성경 이야기를 한 편씩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입니다. 예배·수업·SNS에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이미지도 함께 올립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창세기 1:1–5
1. 아무것도 없던 자리
성경이 창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것은 ‘없음’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토후 바보후(תֹהוּ וָבֹהוּ) — 우리말로 “혼돈하고 공허하며”입니다. 어지럽게 뒤엉킨 상태라기보다, 아직 아무 모양도 잡히지 않았고 안을 채운 것도 없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릇도 빚어지지 않았고, 담긴 것도 없습니다.
그 위를 덮은 것은 어둠이었습니다. 성경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적습니다. 여기서 ‘깊음’은 테홈(תְּהוֹם),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입니다. 빛도 없고, 형태도 없고, 발 디딜 곳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 자리를 부끄러워하며 감추지 않고, 창조 이야기의 첫 장면으로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어둠 위에 이미 계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비어 있는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계셨습니다.
2. 가장 먼저 부르신 것, 빛
그 절대적인 어둠을 향해 하나님이 처음으로 하신 일은 무언가를 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히브리어 원문은 놀랄 만큼 짧습니다. 명령이 예히 오르(יְהִי אוֹר, 빛이 있으라), 성취가 바예히 오르(וַיְהִי אוֹר, 빛이 있었다)입니다. 말씀과 그 말씀이 이루어진 일 사이에 설명도, 과정도, 시간차도 끼어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창조의 첫 걸음은 그래서 어둠을 가르고 빛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집을 지을 재료를 모으신 것이 아니라, 먼저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3. 조금 더 깊이 — 해도 달도 없는데 웬 빛일까?
여기서 많은 분이 걸립니다. 해와 달과 별, 곧 광명체가 만들어진 것은 넷째 날(창세기 1:14–19)입니다. 그런데 빛은 첫째 날에 이미 있었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걸까요?
성경은 이 순서로 아주 분명한 사실을 말합니다. 빛의 근원은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해가 뜨기 전에도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이 점은 창세기가 기록될 무렵의 세계를 알면 더 또렷해집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해와 달은 흔히 섬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해와 달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라고만 합니다. 히브리어 마오르(מָאוֹר)는 등불·조명 기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늘에 걸어 두신 등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첫 장은 마지막 책과 이어집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요한계시록 21:23). 처음에도 해 없이 빛이 있었고, 마지막에도 해가 필요 없습니다. 빛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4. 나누시고, 이름을 부르시고, 좋다 하시고
하나님은 빛을 만드신 뒤 곧바로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창세기 1장 4절의 동사는 와야브델(וַיַּבְדֵּל), 어근 ב־ד־ל 의 사역형 히브딜(הִבְדִּיל)로 ‘갈라 구분하다’입니다. 창조는 채우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뒤섞인 것을 정리하고 경계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무질서한 자리에 질서가, 끝없는 어둠에 낮과 밤의 리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빛은 ‘낮’, 어둠은 ‘밤’.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제자리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어둠도 없애 버리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받았습니다.
“좋았더라”의 토브(טוֹב)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아름답다’는 뜻도 있지만, 창조 기사에서는 제 몫을 하기에 알맞다는 쪽으로 읽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처음부터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알맞게 있었습니다.
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순서가 우리와 반대입니다. 아침이 아니라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유대인의 하루는 해 질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하루는 어둠에서 시작해 빛으로 끝납니다. 하루의 방향 자체가 어둠에서 빛 쪽입니다. 창조의 첫날에 이미 그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삶에 어둠이 깊을 때 우리는 흔히 “빛이 될 만한 조건”을 먼저 찾습니다. 상황이 풀리면, 사람이 도와주면,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밝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첫째 날의 이야기는 순서를 뒤집습니다. 조건이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빛을 있게 합니다. 해가 없어도 빛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혼돈하고 공허한’ 자리에도, 그분은 여전히 “빛이 있으라”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빛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의 영은 이미 그 어두운 수면 위에 계셨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자리에도, 그분은 먼저 와 계십니다.
“어둠을 가르시는 하나님, 제 마음의 깊은 흑암 위에도 오늘 빛이 있으라 말씀해 주소서.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자리에 주님이 먼저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제 빛의 근원이십니다. 아멘.”
🕊 사역 현장에서 이렇게 써 보세요
도입 질문
“불을 다 끄면 방에서 제일 먼저 뭐가 사라질까?”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 보여요’라고 답하면, 첫째 날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활동
교실 불을 잠깐 끄고 위 첫 번째 이미지(어둠뿐인 바다)를 띄웠다가, “빛이 있으라” 한 마디와 함께 두 번째 이미지로 넘깁니다. 말씀 한 마디에 장면이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적용
“내 마음에서 아직 캄캄한 곳은 어디일까?” 한 사람씩 종이에 적어 접어 두고, 마지막에 “그 위에도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로 마칩니다.
⬇ 오늘의 이미지 4장 — 자유롭게 내려받으세요
혼돈하고 공허하며 |
빛이 있으라 |
빛과 어둠을 나누사 |
넷째 날 — 해와 달과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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